“아이비리그보다 한국 명문대로”… ‘기러기’의 귀환

■ 美서 열린 한국대학 입시설명회 북적

지난달 12일 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열린 고려대 주최 입시 설명회에는 200명이 넘는 학부모가 몰렸다. 고려대가 해외 동포와 주재원 자녀, 조기유학생을 대상으로 미국 대학입학수학능력적성검사(SAT)와 현지 고교 성적만으로 글로벌 전형을 실시한다는 소식에 한인 학부모들이 큰 관심을 보인 것.

2005년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 와 기러기 생활을 해온 김모(45) 씨는 “미국에 올 때는 당연히 미국 대학만 염두에 뒀지만 아들이 장래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할 가능성이 큰데 그러려면 학맥을 쌓을 수 있는 한국 대학이 나은 게 아닌가 싶어 솔깃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자녀의 교육 계획을 짜면서 ‘중등교육까지는 영어권에서, 고등교육은 한국에서’를 생각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중고교를 다니면 대학도 해외에서 진학하는 걸 유일한 코스로 여겼으나 이젠 한국 대학으로 ‘U턴’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비리그 대신 한국 명문대로”=올해 6월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한 고교를 졸업한 윤모(18) 양은 15일 한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윤 양은 이미 올 초 아이비리그의 코넬대 경제학과를 비롯해 10여 개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봄 연세대 국제학부와 고려대 법학과 특별전형에 지원해 합격하자 미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수능 성적을 요구하는 서울대에도 도전하기 위해 시험을 치렀다.

“미국 대학을 졸업해도 언어나 문화 장벽으로 인해 불리할 수 있는 반면 한국 대학에선 인적 네트워크 형성이 가능하고 한국 시장과 관련된 국제 기업에 취업하기도 더 수월하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한국으로 전학 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상사 주재원이었던 A 씨는 임기를 마치고 고교 2학년이던 아들과 함께 귀국했다. 아들은 SAT 성적이 고득점인 2320점이고 다양한 봉사 및 특기활동 경력을 갖고 있어 주변에선 “아이비리그의 어디 대학이든 충분히 갈 수 있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A 씨는 “한국인으로 살 거라면 한국 대학을 가는 게 낫다”고 고집했다. 아들은 올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진학했다.

교육인적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외국 고교에서 한국 고교로 편입하는 학생은 2002년 979명, 2003년 1391명, 2004년 1755명, 2006년 2975명 등으로 증가 추세다.

입시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3000명 이상인 ‘어학 특기 전형’ 수시 합격생 중 20% 이상이 외국 고교 출신일 것으로 추산한다. 2007학년도 연세대 국제학부의 수시 1학기 합격자 83명 중 해외 고교 출신이 35명이다. 외국 명문대에 복수 합격한 학생도 24명에 이르렀다.

▽왜 U턴하나=주요 사립대는 대부분 해외파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에 이어 연세대, 서강대 등 7개 사립대도 내년 초 미국에서 공동 입학 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아들이 미국 중고교 재학 중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고교 2학년 때 한국으로 데리고 들어간 B 씨는 “솔직히 하버드대, 예일대 등 톱클래스 학교라면 집을 팔아서라도 보내겠지만 미국 대학은 성적만으로 뽑는 게 아니어서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고 말했다. 등록금이 연 4만∼5만 달러인데 굳이 미국 대학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

고려대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박모 씨는 “세계 명문 대학 리스트에선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는 한국 명문대 간판이 웬만한 아이리비리그 간판보다 나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결국 ‘톱클래스 대학이라면 어떤 무리를 해서라도 보내겠지만 그렇지도 못한데…’라며 고민하던 학부모들에게 한국 명문 대학들의 문호 개방이 선택의 폭을 넓혀 줬다는 얘기다.

이 같은 역(逆)유학의 부작용을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초등학교 때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고려대로 진학한 C 군은 대학 생활에 적응을 못해 다시 시카고대로 유학을 갔다.

페어팩스 카운티 문일룡 광역교육위원은 “외국 현지 주류사회로 진입하는 게 어려워 보여 자신의 활동 무대를 한국으로 국한시켜 생각한다면 다소 패배주의적 발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